밤마다 나는 뒤척였다. 불을 끈 방안은 적막했지만, 내 안은 불길처럼 뜨거웠다. 열이 치솟아 이불을 차내면 곧 식은땀에 젖어, 다시 이불을 덮어야 했다. 새벽이면 마치 혼자 씨름을 한 듯, 이불은 늘 바닥에 나뒹굴었다. 젖은 베갯잇을 갈며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은 아직 어둡지만, 서서히 회색과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고, 하루가 다시 시작됨을 느꼈다.

아침이 되어 무거운 몸을 끌고 일어나면, 가족들은 웃으며 “엄마 또 덥지?” “엄마 볼 빨간 사춘기야?” 하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낮에도 달라진 나는 종종 낯설었다. 식탁 위에 놓인 빈 컵 하나에도 화가 치밀었고,가족이 “그 정도는 괜찮잖아” 하고 무심히 말할 때면 괜히 서럽게 눈물이 솟구쳤다.

평소라면 웃고 넘어갈 일들이었다. 대수롭지 않을 말에 울컥 화가 치밀었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고 나면 이내 후회와 눈물이 뒤따랐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들.... 그게 바로 갱년기였다.

어느 날 중학생인 우리 아이가 “엄마 이거 알아? 진짜 웃기지?” 하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유튜브에서 ‘호박고구마’라고 치면 ‘거침없이 하이킥 명장면’이라고 나오는 그 에피소드이다. 거의 20년이 되어가지만, 유튜브에서 역주행해서 모르는 아이들이 없는 유명한 영상이었다.

시어머니가 ‘호박고구마’를 ‘고구마 호박’이라고 부르자, 며느리가 “고구마 호박이 아니라 호박고구마요 어머니”라고 자꾸 수정해주는데, 시어머니는 화를 참지 못하고 “호. 박. 고. 구. 마!”하고 크게 소리 지르며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눈물을 훔치고 밥을 먹는 장면이었다. 화면 속 가족들은 ‘왜 저래’ 이런 황당한 표정이었고, 아무도 그녀를 공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장면에 배경 웃음소리가 깔리고 사람들은 폭소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슬픔이 느껴져 먹먹해졌다. 나의 답답함도 저렇게 농담이 되어, 세상 앞에서는 저렇게 우스운 해프닝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오히려 가슴이 꽉 막히고 눈물이 났다.

사람들은 갱년기를 농담처럼 ‘중년 사춘기’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사춘기는 자라날 봄을 예고하는 계절이라면, 갱년기는 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 같았다. 그 터널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자꾸만 두려워졌다.

나의 모습이, 마음이, 뜨겁고, 서럽고, 이유 모를 눈물까지. 그 혼란 속에서 나는 종종 혼자가 된 듯 외로웠다.

그러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말했다.

“요즘 내가 예민해지고 자주 울 수도 있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몸이 변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

내 말이 끝나자, 아이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엄마, 괜찮아. 우리가 같이 있잖아.”

그 순간, 내 마음속 어둠에 작은 불빛이 켜졌다. 웃음소리 속에서 혼자 고립된 것 같던 내가, 사실은 혼자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갱년기는 내 몸이 고장 난 시간이 아니었다. 뜨거운 열기는 내 안의 오래된 것들을 태워 새로운 길을 완성하라고, 오래 달려온 나에게 잠시 멈춰 숨을 고르라고, 그리고 더 단단하고 깊어진 내가 되라고 알려주는 과정이었다.

예민함은 나를 더 섬세하게 만들었고, 눈물은 타인의 아픔을 더 가깝게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 나는 안다. 이 답답하고 뜨거운 시간이 언젠가는 새로운 계절로 이어질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호박고구마” 같은 외침을, 부끄럽지 않게 껴안는다.

이것은 사라지는 길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보라고 태어나는 길이니까.

내가 여전히 살아 있고, 또 다른 계절을 향해 삶을 완성해 나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